푸른 초원, 길목마다 반겨주는 억새의 물결이 정겨운 해남의 한 작은 마을에 폐교가 된 작은 초등학교가 있다. 언젠가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가득차곤 했을, 이제는 추억만이 깃들어 있는 그 곳. 지난 3월에 가보았을 때는 텅 빈 운동장에서 쓸쓸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무화과 밭으로 만들어 막대기 모양의 무화과나무 묘목을 줄에 맞추어 심고 왔었다.

하지만 이번에 방문했을 때는 우리가 심었던 그 나무들에서 푸른 잎이 자라나고, 놀랍게도 무화과가 하나 둘 매달려 있는 모습을 보며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아직 많이 자라지는 않았지만, 운동장 가득 푸른빛 생명이 움트고 자라나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한쪽에서는 도랑을 파서 둑을 쌓아주고, 한쪽에서는 거름을 주고 흙으로 덮어주는 일을 했다. 기온이 낮고 바람도 세게 부는 추운 날씨였지만 열심히 거름을 나르고 삽으로 흙을 북돋아 주다보니 조금씩 땀이 나기 시작했다. 어린 학생들도 열심히 수레를 나르며 심는 일만큼 정성껏 가꾸는 일도 중요함을 배우고 있었다. 새참으로 맛있는 고구마와 김치도 먹고 점심시간에는 잠시 휴식을 취하며 각자 준비해온 도시락을 먹으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후에도 각자 할 일을 맡아 분주하게 움직이며 무화과 밭을 정성스레 가꾸었다. 삽과 갈퀴를 들고 열심히 움직이다보면 아래만 보게 되기 때문에 가끔 허리를 펴고 하늘을 보며 간단한 운동을 하기도 하였다. 오후의 햇살을 맞으며 삼삼오오 이야기도 나누면서 즐거운 작업을 계속하다 보니 어느덧 날이 저물어 가고 있었다. 작업을 마친 후에는 근교에 있는 한 무화과 농장에 들러 유기농으로 재배하고 있는 무화과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우리가 일군 밭의 무화과나무들은 아직 키도 작고 잎도 많이 달려있지 않지만 언젠가 그 농장에 있는 나무들처럼 자라날 거라는 상상을 하니 뿌듯해졌다.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해남에 있기 때문에 자주 가볼 수는 없겠지만, 심고, 가꾸고, 거두는 과정에 조금씩이라도 참여하면서 식물이 자라나는 생명의 질서를 알아가고 생명의 소중함을 느껴볼 수 있는 시간들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