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의 글은 조선일보 2001년 9월 18일자에 게재된 글입니다.'

경의선 복원공사가 이제 시작된다. 남북교류가 점차 활성화될 모양이다.

그런데 자연생태의 보고인 비무장지대(DMZ)로 볼 때 경의선 복구는 자신의 존재가 크게 위협받는 본격적인 개발의 신호탄이다. 민족분단의 슬픔을 떠안고 버텨오던 DMZ는 그곳에 사는 동·식물들과 함께 옷이 벗겨진 채 쫓겨날까 두려워하고 있는 것 같다. 각종 기념조형물이 세워지고 평화공단이나 무역센터, 신도시가 만들어지면 DMZ도 베를린의 장벽처럼 순식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질 지 모른다. 그래서 유엔은 일찍이 이곳을 생태계 보존지구로 보호해야 한다고 권고했고, 최근 관심있는 사회단체들은 비무장지대의 보존을 위한 시민운동의 필요성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정부가 추진하는 남북 교류사업은 계속 활성화되어 평화정착과 통일기반 조성에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남북 교류사업이 진행되는 가운데에서도 DMZ만은 남북 공동의 그린벨트로 지정되어 개발이 규제되어야 하고 또 그 자체가 영구보전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DMZ는 민족사의 산 교육장이며 세계유일의 비무장지대다. 철원 부근은 옛 태봉국의 근거지였고, 진흥왕 순수비 등 수없이 많은 문화재의 보전·관리가 필요한 지역이다. DMZ는 민족분단과 동족상쟁으로 얼룩진 우리 현대사의 가장 큰 상징물이며, 그러한 피흘림의 대가로 우리에게 남겨진 보물이다. 산재한 군사시설물들도 휼륭한 교육재료다. 한반도에 안전한 평화가 정착되면 세계 각지로부터 많은 관광객들이 올 텐데, 그때 가서 DMZ가 난개발된 흉물로 변해있다면 그것은 우리 모두가 안목이 짧은 사람들임을 만방에 알리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20세기 이데올로기 대립의 상징인 DMZ는 이제 세계에 하나밖에 없음을 생각하자.

둘째, DMZ는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온대 원시림이다. 원시림이 툰드라 지대나 열대에는 많아도 온대지역에서는 아마도 DMZ가 유일할 것이다. 북방계와 남방계의 동·식물이 함께 생태계를 이루고 있고, 금강초롱과 끈끈이주걱 등 1000여종의 식물들이 자라고 있다. 독수리, 곰, 올빼미, 사향노루, 수달, 산양 등이 제멋대로 놀고 있다. 또 쇠가마우지, 흰뺨검둥오리, 검은머리물떼새 등 99종의 새들이 너울너울 날고 있다.

그린벨트로 지정되지 않는다면 이곳은 금세 업자들과 투기꾼들의 전장이 되어 파괴될 것이다. 또 경의선 복원이 불가피하다 할지라도, 사람 중심으로 철로만 뎅그러니 개설하는 것은 시대착오다. 동물들도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는 장치를 함께 설치해주는 것이 21세기형 국토경영이다.

셋째, DMZ를 남북 공동의 그린벨트로 지정하는 것은 그 자체로 효과적인 안전보장 조치가 될 수 있다. 무기반입을 포함하여 이 지역의 녹색공간을 해칠 수 있는 행동에 착수할 때는 반드시 상대방에 사전 통고하기로 양방이 합의한다면 이는 남북의 신뢰관계를 제도화하는 자연스런 방법이며, ‘녹색안보(green security)’라는 새로운 개념으로 비폭력과 평화를 도모하는 한 사례가 될 것이다.

현재 DMZ의 장래에 대한 마스터플랜이 없다. 일단 DMZ를 그린벨트로 선언하는 것이 마스터플랜의 첫 단계이며, 각종 환경친화적인 구상들을 고려하는 것은 그 다음 순서다.

남북 정상은 먼저 DMZ를 그린벨트로 선언하여 그곳의 생태계가 보전되고 녹색안보라는 비폭력적 안보방식이 정착될 수 있는 길을 트기 바란다.

(정윤재 정신문화연구원 국제한국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