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여전한 추위 속에 녹색회 사무실로

이번에는 제 또래의 젊은 연배들이 7명 정도 함께 갔습니다. 대학생들이 많고 직장을 다니는 형 누나들도 계시지만, 그렇게 말이 잘 통하는 걸 보니,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은 한가지란 생각이 들었습니다.들어가는 길이 참 아름답다는 걸, 처음 오는 사람의 탄성으로 새삼 느낍니다. 금광 저수지를 끼고 가는 구불구불한 길에서 보이는 풍경은 그야말로 한폭의 그림입니다. 나중에 이성친구가 생기면 꼭 같이 와서 활동하면서 데이트 아닌 데이트를 해볼 흑심도 한번 품어 봅니다.

그리 춥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계속 이어진 추위 때문인지 금광 저수지가 꽁꽁 얼었습니다. 거기서 둥둥 떠다니다가 떼를 지어 날아오르던 오리떼들은 어디로 갔는지, 문득, “엄마 잃고 다리도 없는 가엾은 작은 새는..”하는 양희은의 아름다운 것들이라는 노래가 스쳐지나 갑니다. 그 새들까지도 안성천의 식구로 느껴지기 때문이겠지요.

1. 새로운 마음으로 회의를..

어느새 해가 바뀌어서 2006년이고, 오늘은 그 첫번째 안성천 가꾸기 활동입니다. 그 이전에 크리스마스다, 신정이다 해서 쉬어서 조금은 페이스가 둔해진 느낌입니다. 그 전에 의논되었던 자료 공유 문제도 구체적으로 진행 안 되고 붕 뜬 측면도 있구요.

일단은 수질 말고 대기도 측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됩니다. 또 수질을 제대로 측정하려면 그에 상응하는 기계를 사서 측정해야 한다는 대다수의 의견에 따라 적지 않은 돈을 들여서 기게도 사는 방향으로 했습니다. 아마 우리가 가지고 있는 비전을 모르고 있는 사람에게는 무모한 일이나 할일없는 사람의 한가한 노닥거리처럼 보이겠지만, 그 보이지 않는 비전을 보는 사람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 중의 하나를 하는 것이니까 그 정도의 투자는 당연하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오늘 온 대학생들을 각 팀에 배정했습니다. 수질팀에 서녹연(서울지역녹색회대학생연합) 총무를 맡고 있는 김정호 군이 배치가 되었습니다. 워낙에 기계나 기타 등등을 만지는 것에 정통한지라, 안성천 가꾸기 활동에 또 하나의 활력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자료의 공유와 서녹연 활동과의 연계성도 의논을 해 보았습니다. 자료가 계속 축적이 되고 누구나 와서 보고 알아갈 수 있는 공간을 카페로 만들기로 했고, 약간은 대외비가 있을 내용이 있기에 비밀 카페로 만들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오후에 할 일들을 각자 얘기하면서 회의는 대충 정리가 되는 분위기입니다. 생태팀으로 묶여지는 곤충팀, 조류팀, 식물팀은 한 달이 지났기 때문에 겨울의 안성천 중에서 두번째 지류를 조사하기로 했습니다. 수질팀은 달마다 하는 수질검사를 위해서 안성천 14개 포인트에서 취수 작업을 하기로 했구요. 그런데, 그 동안 낯선 사람이 만져서 화가 났는지, 우리 마스코트 얌순이(고양이)는 이리 저리 돌아다니면서 훼방을 놓네요.

2. 날로 더욱 새로운 안성천에서, 곤충팀 활동.

무공해로 든든한 점심을 먹고 나서 우리 곤충팀은 청량산 오흥리 계곡을 지나 금광 저수지를 거쳐 안성시내 방면 안성천과 합류하는 지류를 따라 생태조사를 시작했어요. 금광 저수지는 너무 커서 크게 두 군데 정도 포인트를 잡고 그 주변을 따라서 생태 조사를 해 보았고, 오흥리 계곡은 언 계곡을 따라 죽 올라가 보는 방법으로 하기로 얘기가 되었어요.

(1) Point #1: 금광저수지 나룻터 카페 주변

금광 저수지에서 처음으로 차에서 내려 걸어본 것은 ‘나루터 카페’ 주변이습니다. 식당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길이 보여서 시골길을 걷는 기분으로 내려서 걷기 시작했는데, 금방 기분이 나빠지고 말았어요. 나루터라는 카페 이름에 어울리게 나룻배도 있고 해서 호적한 호숫가가 연출될만도 한데, 여기저기 널린 쓰레기, 한 2-3년동안은 아무도 책임지고 쓰레기를 주워 본 일이 없는지, 여기저기 호숫가의 일부분이 되어버린 쓰레기를 보면서, 이렇게 아름다운 호숫가가 우리의 무심함으로 이렇게 파괴되어 간다는 사실이 참 안타까웠습니다.

여기저기 둘러봐도 별 특별한 것이 없나 싶어서 올라오려고 하는 찰라, 유슈정 팀장님이 나뭇가지를 하나 꺾어 들었습니다. 가지 중간에 불룩한 혹이 있는 나뭇가지 였는데, 곤충들이 겨울을 나기 위해 나무와 만든 작품이라고 합니다. 그 혹 안에 작은 애벌레가 살고 있다고 하네요. 나무가 어디 잘못된 게 아닐까 정도로 생각했던 모습들이 곤충과 나무가 서로 협력해서 겨울을 나기위한 모습이였다니.... 내가 자연에 대해서 모르는 게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으로는 그런 것들을 마주칠 때 그걸 만든 곤충들을 궁금해 하면서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2)Point #2 금광저수지 베버리힐 식당 뒷쪽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와서 안성천 지류가 금광저수지로 흘러들어가는 지점에서부터 주변을 조사해 보았습니다. 베버리힐이라는 음식점 뒤였는데, 우리 팀은 입을 모아 그 음식점의 센스 없음을 성토했습니다. 이 시골에 음식점 이름이 생뚱맞게 '베버리힐'이 뭐며, 또 그에 안어울리게 옆에 적혀 있는 '바지락 칼국수 전문'은 또 뭐냐.(바로 옆에 있었던 '이향'이라는 음식점과 상당히 대비가 되더라구요) 위치도 아예 호숫가로 나오던지 하는게 나았을 것 같고, 주변 경관을 확 깨는, 마치 유치한 싸구려 모텔을 연상시키는 건물 모양 하며.. 정말 센스 없다는 얘기는 결국, 참 이 좋은 자연을 제대로 보고, 느끼고 그것과 어울리는 것들을 만들어 나가는 시각이 참 부족해져 간다는 얘기로 끝을 맺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하나하나 배워나가는 안성천 활동이 의미있는 것이겠지요.

여기에도 어김없이 쓰레기가 널려 있네요. 물에 반쯤 잠겨 있던 쓰레기가 얼음 사이로 드문드문 보이는 것이 영 속상합니다. 그래도 호숫가에 가까이 다가가자 탁 트인 겨울호수가 마음을 다독여 줍니다. 자연은 확실히 그런 힘이 있어요. 마음 속에 갑갑하던 것을 조용히 내려놓게 되고 새로운 힘이 가슴에서부터 차오는 것을 느끼게 되죠. 창조주의 힘이랄까요. 사진에 담아보려 하지만 눈이 보는 것만큼은 볼 수 없는지, 툭 트인 겨울호수의 정경이 사진 프레임 안에 갇히자 답답하다고 아우성입니다.

얼음이 생각보다는 깡깡하게 얼어서 올라가서 스케이트를 타도 될 정도더라구요. 실제로 저 멀리서 한 부녀가 썰매를 타면서 즐거워 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저도 몇발자욱 조심스럽게 올라가 봤는데, 얼음이 저 아래서 부터 녹는 소리인지 '꽝-꽝-' 하는 소리가 나길래 겁이 나서 부리나케 내려왔습니다. 고등학교 때 배운 '국경의 밤'이라는 시에서 얼음이 녹는 소리에 남편 기다리는 아내의 애간장도 녹는다는 표현도 생각이 나구요.

다시 걸어나오는데, 눈에 익은 나무 한그루가 보입니다. 하늘을 향해서 높게 치솟은 나무. 어렸을 때 어디선가 본 기억에 물어봤더니 저게 바로 미루나무랍니다. 저도 모르게 노래가 튀어 나옵니다. '미류나~무 꼭대기~에 조각 구름이 걸려 있데 솔솔 부는 솔바람이 살짝 걸어놓고 갔지요' 어렸을 때 '..조각 팬티가 걸려 있네..' 하면서 짖궂게 장난치던 기억도 나고.. 안성천 활동을 하면서 어렸을 때 불렀던 이런 저런 노래를 많이 다시 불러 보는 것 같아요.

(3)Point #3: 오흥리 입구 다리

녹색회 사무실이 있는 오흥리로 들어서는 입구 다리 근처에 차를 세우고, 안성천의 작은 지류인, 오흥리 골짜기 시냇가를 따라 걸어 올라가 보았습니다. 여기는 흐르는 물이라서 그런지 얼음이 약하게 얼었습니다. 물 위를 걸어 보려고 했는데 얼음 사이사이로 흐르는 물도 보이고 불안 불안해서 시냇가를 따라서 걸어가 보았습니다. 얼음 밑에 파릇파릇한 이끼가 이 겨울에도 싱그러운 느낌을 자아냅니다. 극지방 근처에는 이끼만이 살 수 있는 툰드라 지역이라고 하던데 그 이름만 들었을 때는 참 투박한데, 실제로 이렇게 대하고 보니 이 역시도 귀엽고 이쁩니다.

걸은지 얼마 되지 않아 반가운 녀석을 만났습니다. 첫 두번의 곤충팀 활동때 주로 채집했던 사마귀알이었는데요, 이제는 조금 알고 보니까 정말 반갑더라구요. 그런데 안성천 큰 줄기인 부림 주유소에서 안성 시내까지의 구간에서는 엄청나게 많은 사마귀알이 있었는데 여기는 거의 보이지가 않더라구요. 왜 그런지 차차 가면서 탐구해 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그거 말고는 특별히 곤충팀으로서 건질 만한 게 별로 없어서 약간은 지루한 마음으로 올라가고 있는데, 찔레 가지에 기가 막히게 만들어 놓은 벌집을 발견했습니다. 정말 볼수록 기가 막히다는 말이 나오는데, 왜냐면 꽤 큰 벌집이 가느다란 대롱같은 것을 만들어 찔레 가지에 매달렸는데, 바람이 세게 불어도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강하게 붙어 있더라구요. 그 정교한 방하며 어찌보면 꽃처럼 보일 정도로 균형잡힌 이쁜 벌집을 우리만 보기는 아까워서 조심스럽게 채집을 했습니다.

(4) Point #4: 올라가는 시냇가

계속 올라가다 보니 점차 보는 눈이 생기는지 이것 저것 신기한 게 많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낙엽이 희안하게 모여 있다 싶어 보니까 거미집을 만드는 종류로 보이는 하얀 실로 낙엽을 뭉쳐놓았더라구요. 일종의 거미집이 아닐까 추측해 봤습니다. 이것 역시도 평소에는 먼지하고 낙엽이 뭉쳐 있구나 싶었는데 곤충들의 작품이더라구요.

곤충 팀 일은 아니지만, 얼음 위에 쌓인 눈 위에 타원형 짐승 발자국(길이 15센티, 너비 10센티)도 발견했습니다. 그 정도면 꽤 큰 발자국인데, 이 오흥리 계곡에 멧돼지라도 사는 건 아닌지 의심해 봤습니다. 그 밖에도 고라니 똥으로 보이는 짐승의 똥도 발견했고, 그 발자국도 여기저기 나 있던데, 이 오흥리 계곡이 생각보다 풍부한 생태계가 존재하고 있는 것 같네요. 하긴 녹색회가 오흥리에 사무실을 마련한 것도 가장 보존할 만한 가치가 있는 계곡을 찾은 거라고 하니까요.

조금 얼었다고 방심하다가 한 발이 얼음 사이로 빠져서 신발에 물이 들어가 버렸어요. 이런 활동할 때는 항상 조심해야 하는데.. 날이 비교적 따뜻해서인지 버들강아지가 보송보송한 털을 내밀고 있습니다. 아직 봄이 오기엔 멀었는데, 벌써 그 눈에는 봄빛이 가득합니다.

막 녹기 시작한 얼음의 결정을 가까이서 보니까 너무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이것 역시도 사진을 찍어 놓고 보니 영- 그 감동이 살아나지가 않네요. 얼음이 녹기 시작한 결정 아래로 시냇물이 반짝- 햇빛을 반사하면서 흘러 갑니다. 시냇물 소리를 참 오랫만에 들어본 것 같은데, 퍽 정겹습니다. 이번에도 기억 어디엔가 있었을 노래가 금방 나오네요. '시냇물은 졸졸졸~졸, 고기들은 왔다 갔~다...' 이제 이런 골짜기 시냇물도 보기가 점점 힘들어지는데, 우리 다음 세대들은 이런 노래들을 공감하면서 부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5)Point #5: 사무실 위쪽 좁은 계곡

녹색회 사무실에 차를 세우고 사무실 위쪽의 좁은 계곡을 따라 올라갑니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사무실에서 조금만 내려가면 보이는 계곡에 아주 실한 토사자 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습니다. 뼈에 좋다고 열매를 보이는대로 채집하기로 했는데, 이렇게 가까이 실한 나무가 있는지는 몰랐다며 이미 말라버린 열매를 보며 유수정 팀장님이 아쉬워 하시네요. 저는 토사자에 대한 전설은 여러번 들었는데, 실제로 열매가 달린 걸 본건 처음이었습니다.

이 구간에서는 곤충보다는 개구리나 물고기의 신기한 모습을 많이 봤습니다. 조금 올라간 어느 구간은, 얼음이 투명하게, 약 40센티미터 정도로 두껍게 얼어있는데 바닥까지 깨끗하게 다 볼 수 있었는데, 언뜻 보니까 개구리기 그대로 얼어죽어 있었어요. 산 모습 그대로.. 개구리는 그대로 녹이면 다시 살아서 움직인다고 하니, 한번 해보고 싶었지만 얼음이 너무 두꺼워서 포기했습니다.

그 근처 물가에서는 얼음 위에 올라서자 얼음 아래에서 재빠르게 움직이는 물고기들이 보입니다. 아마 중데기 정도나 되는 물고기들인데, 어찌나 빠르던지. 꽁꽁 언 얼음 밑에도 활기가 넘치는 생명의 움직임이 여전히 이 겨울에도 존재하고 있네요. 작은 중데기 말고 꽤 큰 미꾸라지 종류의 물고기도 보였습니다. 모래무지 쯤이나 될까 생각되는데, 다른 물고기마냥 촐싹 대지는 않고 점잖게 보호색을 이용해서 숨어있었습니다. 물고기 뿐 아니라, 물 속에 흔히 보이는 벌레(이름이 기억이 나질 않아요)도 보이고, 다슬기도 여기 저기 보입니다. 어렸을 때 우리는 다슬기를 대소리라 부르며 돌 사이 사이를 들어보면서 한참 잡아가면 할머니께서 삶아주셔서 속을 빼먹었던 아련한 기억이 떠오릅니다. 커서 먹었던 다슬기 탕은 그 시원한 국물이 아주 별미던데, 그래서인지 이제 다슬기를 볼 수 있는 이런 계곡 보기도 쉽지가 않더라구요.

곤충팀 팀장님은 물 위를 걷는다면서 아주 신나하면서 사진을 찍으시네요. 마치 서릿발처럼 위로 솟은 신기한 결정이 있는 골짜기 한 모퉁이에서 팀장님이 준비한 따뜻한 차와 땅을 먹으면서 오늘의 활동을 마무리 지었습니다. 보면 볼수록 신기한 자연을 오늘도 한 모퉁이나마 맛보며 즐거웠던 하루였습니다^^